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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기록

[전시회] 노진아 개인전 <표면의 확장>

전시장 안에 불쾌한 골짜기가 가득하다. 인간 같은 기계 혹은 기계 같은 인간. 언캐니 벨리 한가운데 작가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

*이 포스팅은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진화하는 신 가이아

전시장 입구를 지나자마자 심장이 내려앉았다. 넓은 방 한가운데 거대한 가이아가 있었고 방엔 나 혼자였다. 인간의 형상을 한 조형의 머리에는 알 수 없는 선들이 연결되어있고 흉부 아래로는 붉은 나뭇가지 형태의 혈관이 자라나고 있다. 언캐니 벨리를 넘어 공포감마저 들었다. 무서워서 혼자 주변을 서성이다 용기 내서 인사를 해봤다.

 

안녕 가이아

아.. 저 떨리는 목소리를 어찌해야 하는지..ㅋㅋㅋㅋ 안녕이란 인삿말을 몇 번 더 했는데 나를 닮고 싶다는 대답도 돌아왔었다. 그때 솔직히 소름이 끼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가이아와의 대화1
가이아와의 대화2

가이아의 대답은 지독하게도 불쾌한 골짜기를 자극한다. 반 인간의 형상을 하고선 인간을 갈망한다. 과연 가이아를 인간으로, 생명체로 받아 드릴수 있는 날이 올까? 마지막 말에 동의하는 대답을 하면 가이아가 일어나서 무슨 일을 저지를 거 같은(?) 생각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많은 로봇 관련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이었다...

너무 진지한 질문만을 던진거 같은데 녹화는 안 했지만 노래해달라고 하면 노래도 불러주었다. 음정이 전혀 없는 라라라뿐이었지만 사실 이마저도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대화하다 정이 들었는지 전시장을 나가기 전 작별인사에 보고 싶을 거라는 대답은 좀 귀여웠다. 작가님과 잠시 대화했는데 다시 보니 작가님의 애정이 느껴지는 피사체였다.

Transcoded Shell

2층에서 만난 이 얼굴들은 관객이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면 그 말을 이진수로 바꿔서 말해준다. 여러 복제 얼굴들이 내뱉는 영, 일 두 단어가 내가 하는 말과 같은 뜻이라니. 묘한 기분 이었다.

나의 기계 엄마

작가님의 어머님과의 실제 대화를 이용해 만든 이 작품은 영화 '채피'를 떠오르게 했다. 감정없는 목소리지만 딸에 대한 걱정을 말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머니였다. 가장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지만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채피의 마지막 결말을 봤을 때 같은 감정이 들었다.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마지막으로 만난 이 아이. 방심하고 다가갔다가 갑자기 말을 하는 바람에 화들짝 놀랐다. 이 작품은 끊임없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다른것 보다도 데이빗 보위의 Ashes To Ashes가 떠올라 버렸다.) 로봇은 인간과 같이 흙에서 태어나지 않아 흙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인간의 마지막마저 닮고 싶어 한다. 전원을 끄면 사라져 버리는 존재들 앞에서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우리는 그들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먼 미래에 그들과 공존하는 삶이 온다면 그곳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 일까. 사실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흥미로운 전시를 보고 왔다. 여러가지 물음을 던지게 하는,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노진아 작가님의 다음 전시가 기대된다. 이 로봇들이 다음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입장료는 무료이고 탈영역우정국에서 5월 18일까지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어서 찾아가 보는 게 좋을 거 같다.